2023. 10. 23. 10:11ㆍ경제
아침에는 달달한 커피. 점심에는 맵고 짠 마라탕. 간식으로는 달콤한 탕후루. 저녁 술자리에선 상큼한 하이볼. 요즘 MZ세대의 식습관을 보여주는 식음료다. 이름만 들어도 군침 돌지만 그거 아시는가. '칼로리 폭탄'인 데다 '음식 중독'을 부추길 수 있다는 것을. <뉴스1>이 MZ세대의 식탁을 집중 점검해봤다.
직장인 김희은씨(가명·여·30)의 가방 안에는 젤리와 쿠키, 달고나 등 간식이 항상 넘쳐난다. 희은씨는 스트레스가 치솟는 순간 간식들을 꺼내 먹는다. '손이 가요, 손이 가, 자꾸만 손이 간다'는 과자 광고 문구가 있지 않은가. 희은씨의 손이 딱 그런 경우다.
그는 "회사 선배가 열받게 하거나, 일이 잘 안 풀릴 때 어지러우면서 단 음식이 당긴다"며 "그럴 때 젤리나 과자를 입에 넣어주면 기분이 좋아지는데, 마치 나를 충전하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희은씨는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마치 중독된 것처럼 자꾸만 손이 간다"며 "정신 차리고 보면 과자가 동나 있다"고 덧붙였다.
◇인스타그램서 본 탕후루 인증 사진
희은씨는 요즘 탕후루에도 빠졌다. 어린아이 주먹만 한 귤이 통째로 세 개나 꽂혀있는 통귤 탕후루는 그의 '최애 음식'(최고로 좋아하는 음식)으로 등극했다. 희은씨는 "앉은자리에서 순식간에 탕후루를 해치운다"고 말했다. 누군가 인스타그램에 올린 인증 사진을 보고, 그는 다음날 탕후루를 사 먹기 시작했다.
그런 희은씨는 최근 몸에서 이상 신호를 느꼈다. 간식을 먹으면 허기가 진다는 것. 자꾸만 음식에 손이 가는데, 금세 출출해지곤 한다. 그는 "달고나를 먹고 나면 갑자기 배가 고파질 때가 있다"며 "그러면서 과자를 더 먹게 된다"고 말했다.
탕후루와 마라탕으로 대표되는 MZ 식단의 특징은 '자극적'이다. 더 큰 자극을 원하게 되는 인간의 특성상 탄수화물·나트륨 중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먹방(음식 먹는 방송)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라오는 자극적인 음식 콘텐츠들도 중독을 부추기는 요인이다.
전문가들은 자극적인 음식에 일정 기간 노출될 경우 당뇨와 고혈압, 신장 질환 등 각종 성인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고 경고한다.
◇마약 중독과 비슷한 탄수화물 중독
특히 '끊임없이'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탄수화물 중독에 대한 우려가 높다. 의학계에서는 성인 기준 하루 탄수화물 적정 섭취량인 300~400그램(g)보다 많을 경우 '탄수화물 중독'으로 보고 있다.
탄수화물에 중독되는 경로는 마약과 흡사하다. 마약과 마찬가지로 섭취 시 뇌에서 쾌락 호르몬인 '도파민'이 분비되기 때문이다. 마약류 중독자들이 강한 자극을 위해 더 강한 약을 투약하는 것처럼, 탄수화물도 중독이 되면 더 강한 단맛을 찾게 된다.
특히 단순당(정제 탄수화물)을 함유한 초콜릿, 케이크, 탕후루 등 섭취 시 달다고 느껴지는 음식들이 중독을 유발한다. 탄수화물은 다당류인 녹말부터 포도당인 단당류로 종류가 다양한데, 단당류에 가까울수록 달고 체내 흡수가 빠르다.
미국 미시간 대학 심리학과 애슐리 기어하트 교수가 200여개국의 연구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성인의 14%가 아이스크림 등 초가공식품에 중독 증상을 보였다. 연구팀은 초가공식품에 함유된 단순당은 니코틴이나 알코올과 비슷한 수준의 도파민 분비를 유도한다는 결론을 냈다.
강재헌 강북삼성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이미 자극적인 맛에 적응이 된 사람들은 더 단 음식을 먹어야 달다고 느낀다"며 "점점 더 단 음식을 갈망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단 음식은 '혈당 스파이크'로 중독의 고리를 강화한다. 식후 혈당이 치솟았다가 다시 떨어지는 현상이다. 혈당이 급격히 높아질수록 췌장은 많은 인슐린을 분비하는데, 이 과정으로 혈당이 빠르게 내려가면 몸은 '허기짐'을 느낀다. 결과적으로 다시 탄수화물을 찾게 된다. 앞서 희은씨가 달고나를 섭취한 후 허기짐을 느낀 것도 '혈당 스파이크' 현상으로 추정된다.
스트레스도 탄수화물 중독의 원인 중 하나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부신에서 혈당을 높이는 호르몬인 '코티졸(Cortisol)'이 분비된다. 혈당이 높아지면 췌장에서 인슐린을 분비하는 만큼, 허기를 느끼게 된다.
직장인 이모씨(여·30)는 "업무 스트레스가 과도할 때마다 단 음식을 찾게 된다"며 "달콤한 음식은 한번 고삐를 놓으면 끝도 없이 먹게 되는데, '내가 중독된 건가'라고 느껴질 때도 있다"고 전했다.
탄수화물 중독이 지속되면 비만은 물론 지방간, 당뇨, 나아가 췌장 질환까지 나타난다. 얼굴에 여드름이 많이 나거나, 피부 노화를 앞당긴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짠 음식'도 중독이 된다. 소금도 설탕과 같이 섭취하면 뇌의 중추에서 쾌락 반응이 나타난다. 더 맵고, 더 짠 음식을 갈망하게 되는 이유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인은 식단에 찌개 같은 국물 요리가 많은데, 최근 MZ들 사이에서 마라탕이나 소금빵 등 '더 짠' 음식이 유행하면서 나트륨 중독이 가속화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나트륨을 다량으로 섭취하면 고혈압과 뇌졸중에 걸릴 위험이 커진다.
◇속출하는 고혈압·당뇨 환자
SNS와 유튜브도 탄수화물이나 나트륨 등 이른바 '미각 중독'을 부추기는 요인이 되고 있다. 탕후루나 마라탕 외에도 현재 유튜브에서는 초콜릿 스무디 등 카페 음료 제조 콘텐츠나 먹방 유튜버들의 자극적인 음식 먹방 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다.
MZ들도 음식 정보를 SNS나 유튜브 먹방 영상을 통해 얻었다고 전했다. 희은씨는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짧은 영상(쇼츠)에서 음식 콘텐츠를 즐겨 본다"며 "그런 영상을 보다 보면 맛이 너무 궁금하다"고 말했다.
직장인 이모씨는 "유튜브를 통해 새롭게 유행하는 디저트를 알게 된 경우가 많다"며 "최근에 아이스크림을 넓적한 젤리에 넣어 찹쌀떡처럼 싸 먹는 영상을 많이 봤는데, 정말 먹어보고 싶다"고 전했다.
MZ들의 건강은 악화하고 있다. 서영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받은 '만성질환자 현황'에 따르면 20~30대 당뇨환자는 지난 2018년 13만9682명에서 2022년 17만4485명으로 24.9% 증가했다. 같은 기간 고혈압 환자는 21만3136명에서 25만8832명으로 21.4%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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